대부분의 우리는 십 대 아이들과 잘 지내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대략 11살, 12살까지는 말썽을 부리고 곤혹스럽게 만들지언정 기본적으로 부모의 지시를 따른다. 13살부터는 '토를 다는 세대'로 넘어간다. 이른바 why세대다. 무엇이든 받아들이기 전에 일단 '왜'부터 제기하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여러분도 나처럼 이런 일을 그렇게 잘 다루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되는 상황도 없다. 나는 이제 골치 아픈 상대를 다루는 5단계가 십 대를 설득하는 데도 요긴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십 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보자.
“테일러, 파티에 가기 전에 쓰레기 좀 내다 놓아라.”
이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말은 대략 이럴 듯싶다.
“에이, 아빠,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어요. 지금 곧장 가야 하거든요. 아빠가 내놓으면 되잖아요."
이 말에 대해 세상의 보통 아빠들이라면 거의 대부분 “뭐? 내가 하면 된다고?"라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맥락을 설명하거나 조건을 열거하지 않는다. 우리는 바로 3단계로 돌입하고 협박 같은
조건을 꺼내놓는다.
“너, 쓰레기 내놓지 않으면 외출 금지야!"
물론, 이때 십 대 자식으로부터 되돌아오는 것은 뻔하다.
“불공평해요. 뭐든 제가 해야만 하잖아요. 아빠는 아무것도 안 하고......"
이제부터 당신은 심각한 얼굴로 논쟁을 벌이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왜 2단계인 '전후맥락 설명하기'를 번번이 생략하는 것일까? “테일러, 반년 전에 우리가 한 약속 잊지 마. 매주 금요일 저녁에 쓰레기 내놓는 데 동의했을 텐데. 외출하기 전에 쓰레기를 내놓아야 약속이 지켜진다는 거, 알지? 네가 한 약속이니까 네가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니?"
어떤 아이들의 경우, 명예에 호소하는 것은 즉시 효과를 나타낸다. 우리 아이도 그랬다. 하지만 다루기 힘든 십 대 아이를 둔 부모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당신은 이런 말에 익숙할는지도 모른다. “그래요, 알겠어요. 왜 용돈 얘기 안 꺼내나 했어요. 이젠 지긋지긋해요. 어쨌든 저는 지금 바쁘니까 바쁘지 않은 분이 쓰레기를 내놓으면 되겠네요."
지금이 바로 위협이 아니라 조건을 제시해야 할 타임이다. 이런 말이 효과를 거둘지 모른다.
“테일러, 들어봐. 우린 약속을 했어. '쓰레기를 내놓고, 테일러는 파티에 간다.'라고 말이야. 네 힘으로 쓰레기를 내다 놓지 않아도 상관은 없어. 어떻게든 쓰레기만 내놓으면 되는 거니까. 쓰레기를 대신 내놔달라고 누나나 엄마한테 뇌물을 쓰든, 해리포터처럼 주문을 외우든, 아빤 개의치 않아. 다만 쓰레기가 밖에 나가있지 않으면 파티도 없는 거야."
이 경우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마도 쓰레기를 내놓을 것이다. 자존심을 건드리는 비난을 전혀 하지 않았고, 쓰레기를 밖에 내다 놓기만 하면 체면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테일러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가령, 테일러가 이렇게 말한다.
"전 하지 않을 거예요! 전 지금 무지무지 바쁘다고요!"
당신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4단계로 곧장 돌입하게 된다.
“테일러, 들어볼래? 이 상황에서 네 협조를 얻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금요일 저녁 쓰레기는 네가 내놓기로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킬 방법이 뭐가 있을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위의 말로 더 이상의 논쟁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는 쓰레기를 밖에 내놓게 되고, 신뢰는 유지되며, 체면도 겨우 세우게 된다. 만약 이 상황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외출을 못하게 하거나, 아이를 방으로 돌려보내거나, 용돈을 몰수하거나, 적절한 벌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당신을 비난할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결국 선택한 것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벌은 아이가 네 번째 단계조차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한 적절한 행위다. 아이는 저항하고 거부할 권리가 있다. 그런 일들을 거듭하면서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이것은 마치 근육을 움직이는 일과 같다. 아이들에게 움직일 공간을 주어야 한다. 늘 위에 올라앉아 누르고만 있다면, 그들은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거부나 저항에 따르는 대가 역시 그들의 몫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어떤 경우든 절대 선의를 잃어서는 안 된다. 선의는 자발적인 따름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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