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기울여 듣기'는 사실 자연스런 행동이 아니다. 이것은 매우 인위적이고 가히 예술적이라 할 만큼 기술적인 행위다. 보통 귀를 기울 여 듣는 것과 말하기는 정반대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잘 듣지 않으면 잘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말하기의 반대말은 '끼어들기 위해 기다리기'다. 귀 기울여 듣는 적극적인 행위는 고도로 복잡한 기술이다. 여기에는 네 가지 다른 단계가 있다.
(1) 편견 없이 마음열기
(2) 문자 그대로 듣기
(3) 해석하기
(4) 행동으로 옮기기
사람들이 누구나 마음을 열어놓고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을 거란 생각은 버려라. 내가 거리에서 찾아낸 것 하나는 의사소통의 책임이 듣는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책임은 말하는 사람에게 있다. 말하는 사람이 자발적 따름을 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흔히 고등학교 교사들은 말한다.
“저는 끔찍한 반을 맡았습니다. 제가 뭘 할 수 있죠?"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내 대답은 이렇다.
"끔찍한 반 같은 건 없어요. 끔찍한 강의가 있을 뿐이죠."
미안한 말이지만, 수업에 관한 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교사다. 나는 거의 항상 끔찍하다고 생각되는 반에서 수업을 한다. 왜냐하면 내 강의의 수강자는 대부분 자발적으로 참석한 사람이 아니다. 강의를 듣도록 보내진 사람들이다. 배우고 싶은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미 전문가다. 거리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고, 매일 위험한 상황에 처했고 그 상황을 수습해온 베테랑들이다. 박사 아니라 박사 할아버지가 와서 강의를 해도 자신들에게 새로운 것을 말해줄 수는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몸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걸 말로 처리한다고 하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할 때 먼저 필요한 것은 내게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 주의를 끄는 일이다. 소통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꺼이 책임을 져야 한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당신의 능력과 태도가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또 하나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만약 사람들의 말에 곧이곧대로 대응한다면, 당신은 실수를 저지르게 되어 있다. 술, 마약, 분노, 두려움, 걱정, 무지, 어리석음, 혹은 편견에 취해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에는 진짜 속뜻이 전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사례에 귀를 기울여보기 바란다.
| [문 앞에 선 보안관] 어떤 지방 경찰청에서 강의를 하는 날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젊은 보안관이 운전하는 순찰차를 타고 수업 장소로 가는 중이었다. 우연히 강도 피해를 당한 집으로 가보라는 연락을 받았고 우리는 차를 돌려 현장으로 갔다. 보안관은 현관에서 노크를 했다. 문을 열자 한 발 들어서기도 전에 집주인은 봇물이 터지듯 말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당신들은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타나는 거야? 내가 전화한 건 세 시간 전이야. 근데 이제 나타나? 말도 안 돼! 잘 들어, 당신 같은 사람들한테 질렸어. 내가 낸 세금으로 당신들 봉급을 주는데, 정작 필요할 땐 코빼기도 안 보여! 넌덜머리가 나. 내 집 좀 봐! 싹 다 털렸어. 모든 게 날아갔다고.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커피 마시고 도넛 처먹으면서 빈둥빈둥 돌아다녔겠지. 어디 주차딱지 뗄 건수나 찾으면서 말이야. 그건 어린애도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런 일이나 하라고 당신들한테 경찰 배지를 달아준 거야? 어디 입 있으면 놀려보시지 그래!" 시작부터 된통 당한 꼴이었다. 보안관은 고된 하루를 보냈다. 그런 탓이었을까, 그의 입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런 말들이 튀어나왔다. “이봐요, 나도 말 좀 합시다.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네. 당신의 그 험악한 말을 가만히 들어줄 만큼 봉급을 많이 받고 있진 않아요. 난 여기로 왔고, 도움을 받고 싶다면 도움을 줄 거요. 당신이 원하는 게 나한테 욕을 퍼붓는 거라면, 난 내 할 일을 하러 가겠소. 선생 문제는 선생이 알아서 해결하시고." 그는 돌아서서 현관으로부터 멀어져갔고, 물론 집주인은 화가 폭발했다. |
이미 앞에서 배운 바 있듯이, 보안관의 대응에는 문제가 있다. 그는 어떻게 말해야 했을까? 그에게 쏟아져 들어온 말들은 분노와 욕구 불만이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희생자인 시민의 마음에 담긴 '진짜 말'은 그가 쏟아낸 험악한 비난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의 마음에 진정으로 담겨 있던 것은 이것이다.
- “도움이 필요합니다."
- “도난당한 물건들을 찾을 수 있을까요?"
-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세상이 정글 같아요.”
- “이런 꼴을 당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죠?"
강도를 당해본 사람은 누구나 희생자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짐작 한다. 강도를 당한다는 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누군가 내 집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것이다. 총이나 칼을 들고, 많은 경우 심각한 강탈을 당하게 되면 그 집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한다.
그렇다면 강도를 당한 시민은 왜 위의 네 가지 본심을 털어놓지 않았을까? 그는 왜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늘어놓았던 것일까?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속이 상했기 때문이다. 좌절감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그걸 터뜨리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통의 달인, 소통의 마이클 조던이었다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집주인이 쏟아낸 말에는 그 사람의 진짜 속뜻이 담겨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일단 '단칼 찌르기' 한마디를 던졌을 것이다. 거기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갔을 것이다.
“선생님, 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제 제 말 좀 들어보시겠어요? 선생님이 옳아요. 세상은 정글입니다. 저희가 필요한 게 바로 그 때문이죠.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왔다면 몰아내기 위해서 저희가 있는 겁니다. 지금 필요한 건 저희가 집을 둘러보고 도울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아내는 겁니다.
선생님은 저기 앉아서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둘러보는 건 저희에게 맡기세요. 도난당한 물품들은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혹시 도난품의 카탈로그나 번호 같은 게 있으면 알려주세요. 찾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조서 쓰는 일도 중요합니다. 조서는 단순한 요식행위가 아닙니다. 사건의 정황을 자세하게 기록할수록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할 수 있죠. 조서의 정확도에 따라 도난품을 되찾을 확률이 40퍼센트나 높아집니다. 재발 방지에도 도움이 되고요. 자, 이제 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나는 경찰관이라면 누구나 이런 식의 태도를 보여줄 거라고 간절히 믿고 싶다. 시민은 담배를 피워대며 막말을 내뱉기도 하는 존재다. 하지만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게 경찰관의 직무이기도 하다.
보안관은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첫째, 그는 프로 답게 재빨리 현장에 접근하고, 신속하게 마무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의 순찰차 컴퓨터 화면은 출동을 기다리는 온갖 현장들로 가득 차 있다. 둘째, 이것이 아주 중요한데, 그는 집주인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보다 더 좋은 느낌을 주고 그곳을 떠날 필요가 있었다. 피해자의 입에서 “그 경찰관이 애써주었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여야 했다. 아쉽게도 나를 태워주던 보안관은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지 못 했다.